장준호(43) 두 조각가는 도판을 고해상도로 스캔한 다음.
1925년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PF.박승구·이국전·윤효중 등 차세대를 이끌어 갈 걸출한 조각가들을 길러낸 것도 이 시기였다.
도판과 유사한 체형의 국가대표 체조선수(키 170㎝)를 모델로 섭외했다.동경미술대 유학 시절부터 ‘토월회 ‘파스큘라 등 사회주의 문예 단체를 조직하고 이끌던 그는 1923년에는 민중미술론의 효시라 할 ‘상공업과 예술의 융화점을 발표했으며.‘김복진과 한국 근현대조각가들(청주시립미술관.
총 3개월여 동안 원형에 가까운 작품을 얻어 내기 위해 4차례나 상을 재제작했다.당시 ‘소년의 모델이 손기정 선수였다는 ‘설이 나돌 만큼 단단한 근육질이었던 점을 감안해.
국립현대미술관의 협력에 힘입어 석고상으로 복원되었다.
낙관보다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새해 아침에 시대를 앞서간 그의 예술혼을 다시 생각해 본다.사진으로만 남은 근대조각 수작 첨단기술 활용 80여년 만에 재현 원작과 구분되는 새로운 분위기 이 시대에 돌아본 작가의 예술혼이병호·장준호.
원작의 외형을 알려주는 단서는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에 실린 고화질의 흑백 도판이 유일하다.카프)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모델의 나이를 2차 성징이 지난 고교생으로 추정했다.도판만으로는 확인이 어려웠던 측면과 후면을 구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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